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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대하여 

 주변은 온통 붉었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아달라는 듯 사람들의 찢어지는 비명은 송태원의 귓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송태원의 시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힘없이 이리저리 요동을 치는 시선 안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이리저리 스쳐 지나갔다.
 수차례 머리를 흔든다고 생각한 뒤에야 시야가 조금 안정되었다. 자신의 옆으로, 뒤로 몰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송태원은 패닉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물체에 집중했다. 송태원은 그것을 확인한 순간 제 몸의 장기가 술렁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물체는 흡사 짐승같기도 했고, 형태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온 몸을 빨갛게 치장한채 격양된 기분을 숨기지 않고 이곳 저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는 울컥거리며 주위를 삼켰다. 금세 토기가 밀려왔고 순간적으로 또다시 머리가 어질거렸다.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꿈틀거리는 시체 하나를 짓밟은 그것과 시선이 마주쳤다.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번들거리는 검은 눈. 예민하게 떨리던 몸이 어딘가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시야는 그 눈과 마주친 그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송태원은 그제야 깨달았다.
 제가 바라본 그 눈빛은, 살점이 튀고 피가 흩뿌려지는 것이 행복한 듯 웃으며 저를 곧게 응시하는 그 눈빛은, 자신의 것이었다.

 

 송태원은 눈을 번쩍 떴다. 낮은 침음과 함께 그는 아직 뻑뻑한 눈가를 손바닥 끝으로 꾹꾹 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요샌 잘 꾸지도 않더니. 그는 무의식중에 이를 갈았다. 꿈의 내용은 놀라운 것도 아니었으나 손끝에 남아있는 선뜻한 감각과 온 몸이 붕 뜬 것 같은 몸의 상태는 영 좋지 않았다. 문득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아침 알람도 울리지 않은 이른 시간이다. 송태원은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핸드폰 속 알람을 꺼버린 채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잠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의 4일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한 뒤에 보장받은 휴일이었다. 나흘동안 많아봤자 1~2시간씩 쪽잠을 자던 사람의 몸은 한번 깨면 쉽게 잠이 들지 못 할 걸 잘 알아서, 조용해지는 초저녁부터 침대에 파고들었던 것이 어제 일이었다. 이렇게 일찌감치 잠에서 깰 줄 알았다면 어제 밀린 일을 하나둘 끝내놓고 지친 듯이 쓰러져 자버릴 것을, 송태원은 자책하듯 표정을 구겼다.
 그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세워 냉장고로 향했다. 좁은 집은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금방 손에 잡힐 정도다. 자연스럽게 페트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마신 그는 짧은 숨을 토해냈다. 
 아직 무디게 움직이는 것 같은 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악력 때문에 뻘겋게 변했다가 다시 풀어지는 제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각성하고 난 뒤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직접 들어간 것은 수도없이 많았으니 제 온몸이 몬스터의 체액이나 피 같은 것, 혹은 살점 같은 것들이 뒤덮는 일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을 죽이는 것은 합리적인 이유이고,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오곤 했다. 특히 이번 꿈처럼 손 안에 남아있는 뜨끈하고 미끄덩한 감촉은 항상 불쾌하기까지 했는데, 그는 최근에서야 가끔씩 느끼는 그 ‘불쾌함’을 기뻐하기로 결심했다. 그토록 원하는 일반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감각이다. 피 튀기는 상황과 긴장으로 가득한 나날 속에서 가끔이라도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는 것. 송태원에게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자신이 ‘인간 송태원’으로 남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족쇄인 것에 안도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무언가를 벗어던지듯 손을 털고 머리도 가볍게 털어냈다. 계속해서 꿈을 기억하며 우울해할 필요는 없었다. 송태원은 생각을 종이접기하듯 차곡차곡 접어 뒤켠으로 밀어넣었다.
 송태원은 부지런하게 어젯밤의 흔적을 살피며 움직였다. 피곤에 절어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던 옷을 대강 추슬러 옷걸이에 걸었다. 나흘 동안 입었던 셔츠와 바지는 보고서를 작성하던 때의 모양대로 팔 안쪽이나 다리 뒤쪽, 앉아있던 곳곳에 주름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송태원은 오늘이 며칠이었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새벽 4시다. 주말도 아니었으니 9시가 조금 넘으면 근처 세탁소도 문을 열 것이었다. 오전에 가서 맡겨놓으면 이른 오후에는 받아볼 수도 있을 테지. 그는 옷걸이를 들고 현관 앞의 신발장 문고리에 조심스레 걸어놓았다.
 옷을 정리한 후에는 밀린 집안일을 하나둘씩 해치워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먹고 시간이 없어 남겨두었던 그릇은 송태원의 손 안에서 생각보다 경쾌하게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송태원은 덩치에 맞지 않게 하나씩 꼼꼼하게 닦아내고, 식기 건조대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다음에는 창문을 연 뒤 일어난 이부자리를 정돈했고, 떨어졌던 자잘한 소품들-어린이집이나 고아원을 방문하는 날에 받아오는 종이접기 선물들-을 다시 세워두고 청소기를 돌렸다. 금세 깔끔해진 집 안이 나타났다. 본가를 나오고 나서 자취를 시작할 때부터 들여놓았던 청소 습관은 현재까지도 꽤 유용한 편이라 송태원은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꽤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했다. 
 바깥은 이제 막 해가 뜨는 모양인지 점차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이른 산책이라도 하고 올까.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온도를 확인한 그는 재빠르게 회색 후드집업을 걸친 뒤에 무릎이 좀 나온 트레이닝 바지를 집어 들었다. 편하다는 이유로 운동할 때에는 항상 입던 브랜드 중 하나였다. 송태원은 이것도 곧 처분해야하나, 하고 생각하며 아쉬운 얼굴을 하고 바지 안에 제 다리를 집어넣었다. 항상 일 때문에 신고 다녔던 구두를 옆으로 치워낸 뒤 흰색의 깔끔한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었다.

 

 운동을 하며 맡는 새벽 공기는 일을 하던 때의 새벽 공기와 다른 것처럼 느껴졌다. 송태원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다음, 곧 제 페이스보다 좀 더 빠른 템포로 발을 놀렸다. S급이 되고서는 이런 것은 운동축에도 들지 못 했지만, 예전부터 습관처럼 하던 일이다보니 한바퀴라도 뛰지 않으면 체했을 때처럼 속이 얹힌 느낌이 들었다.
 작은 공원을 두바퀴쯤 돌았을 때에 하나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보는 얼굴이라고 생각하며 송태원은 시선을 돌렸다. 바로 옆 새로 생긴 아파트를 맞은 편에 두고 있는 공원이니 그쪽 사람들이 가끔 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TV가 아닌 실물로- 처음 얼굴을 보는 태원을 신기하다는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고, 그가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흠칫거리며 길을 터주기도 했다. 태원은 작게 긴 한숨을 내쉬며 느릿하게 제 집으로 가는 길로 걸음을 돌렸다.
 공원을 지나 골목을 돌면 바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저와 자주 마주쳤던 얼굴들이 먼저 태원을 알은 체를 하며 반갑다고 인사를 해왔다. 아까와는 영 다른 대접에 송태원은 미미한 웃음을 지으며 적당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태원이 사는 동네, 적어도 그 아파트 단지에서는 송태원 자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을만큼, 그들은 비각성자와 각성자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다. 되려 TV에서 하루종일 틀어대는 친숙한 대한민국 S급 공무원 이미지가 먹혔던 모양인지 나이가 든 어르신들은 송태원을 제 이웃의 다 큰 아들마냥 대했다. 송태원은 그것을 고마워해야하는 지, 아니면 위험할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말해야하는 지 고민을 하다 타이밍을 놓쳐 입을 다물기 일쑤였다. 
 시간은 거의 9시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태원은 운동복을 갈아입고 다시 집을 나섰다. 구깃해진 양복을 미리 맡겨두어야 했다. 편한 옷차림으로 걸어나온 태원을 향해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이구, 우리 실장님 아냐! 딱 맞춰 왔네~?”
“아,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송태원은 인사에 화답하며 종종걸음으로 세탁소 앞에 도착했다. 세탁소 문을 열던 아주머니가 해사하게 웃으며 송태원을 반겼다. 송태원은 유독 살갑게 제 편을 들어주고 저를 챙겨주는 세탁소 사장을 그나마 덜 어려워했다.
“오늘은 쉬는 날이야? 웬일이래, 실장님이 평일에 일을 다 쉬고!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떴어?”
 장난스럽게 떠드는 말에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만 빙글빙글 돌렸다. 수도없이 마주쳤는데도 이런 말에 재치있게 답변할 말주변이 없어 그는 머쓱한 웃음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그를 흐뭇하게 보면서 아주머니는 송태원의 손에 들려있던 옷가지들을 냉큼 주워들었다
“평소랑 똑같지?”
“예. 부탁드립니다.”
“그래. 우리 송태원 실장님 옷은 깨~끗하게 해드려야지! 언제쯤 올 거야?”
“오후쯤에 올 것 같긴 한데…….”
“그래, 걱정말어! 그나저나, 오늘은 이후에 약속 있어?”
“? 아뇨. 뭐 도와드릴 일이 있습니까?”
 송태원은 소매도 없는 팔을 걷어부치며 물었다. 그 모습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사장이 깔깔거리며 손사레를 쳤다.
“에이, 여기에 실장님이 도울 게 뭐가 있어. 오랜만에 쉰다니까 물어본거지. 시간 많으면 좀 앉았다가 갈래? 오전엔 할 일도 많이 없으니까~ 테레비 키는 것보단 대화하는 게 낫지.”
 아. 송태원은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가 곤란한 얼굴을 하고 몸을 조금 움츠렸다. 경찰이었던 시절에도 어르신들이 붙잡으면 머뭇거리며 한참 벗어나질 못 했었던 성정은 지금도 여전했다. 잠시 고민하던 송태원은 어차피 오늘은 휴가라는 것을 떠올렸고, 아침부터 이런저런 일들이 있으니 혼자보다는 생각할 틈이 없도록 둘이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송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괜찮으시면 조금 앉아있다 가겠습니다.”
“어머. 오늘은 정말 해가 서쪽에서 떴나보네~”
 권유를 받아들일 거라곤 생각 못 했는지 사장의 웃음 소리가 더 높게 올라가자 송태원은 괜히 쑥스러워 볼을 긁적였다. 작은 TV옆에 믹스커피 한봉지를 꺼내든 사장은 잠시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재빠른 손짓으로 커피를 타고 종이컵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하는 말과 함께 송태원은 조심스럽게 종이컵을 받아들었다. 커다란 손에 조그만 종이컵이 조금 마뜩잖았는지 사장은 조금 서먹하게 웃어보였다. 이것밖에 없어서 어떡하지. 송태원은 괜찮다는 말과 함께 한모금을 들이켰다.
“후후, 실장님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예? 언제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 때 세탁소 처음 온 날 말이야~”
 아. 송태원은 다시 커피를 한모금 삼키고 아랫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와서야 말하지만 그 때 각성자들은 뉴스든 어디든 무시무시한 얘기만 했었잖아. 흉흉한 소문이 있기도 했고. 뭐, 지금도 각성자들은 여전히 무섭긴 하지만.”
 송태원은 들고있는 커피잔을 호로록 마시며 씁쓸하게 웃었다. 종이컵의 끝부분을 투박한 손가락 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그는 여전히 옷을 살피는 사장님에게 시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그 때 송실장님 보고 나는 죽겠구나~ 하고 덜덜덜 떨었는데, 알았어? 몰랐지? 몰랐을거야. 송실장님 그때 얼굴은 지금보다 더 죽상이었는 걸, 뭐.”
 자신을 흘끗 보며 푸흐흐, 웃음을 흘려버리는 사장의 눈을 피하며 송태원은 어색하게 입가를 올렸다.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일이기는 했다. 실장 자리를 맡고 첫 던전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던 날이었다. 새하얗게 질린 그 얼굴에 제가 어떤 위치인가를 다시 깨닫고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던 심장을 기억했다. 송태원은 무의식중에 제 가슴께를 꾸욱 눌렀다. 확실히 예전보다는 지금이 제 감정을 갈무리하는 것에 익숙했다. 그가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사장은 옷을 툭툭 털어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던전이니 뭐니 하지만, 이 나이 먹은 사람들한테는 거의 별세상 얘기지. 손녀딸이 각성자는 사람 하나 으스러뜨리는 건 껌이라는 말도 듣고 나니까, 어휴, 같은 세상 사람 맞나 싶더라고. 정말 바닥에 주저앉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셨습니까. 송태원은 그렇게 답변해놓고는 생각보다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되려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시선을 들어올리자 어린 손자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보던 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 다시 웃어보였다.
“근데 겪어보니까, 실장님은 그 사람들하고 좀 달라보여. 그 무시무시한 얘기하고 맞는 게 전혀 없잖아.”
 송태원이 이해가 덜 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거리낌없는 웃음을 지으며 씨익 웃는 아주머니가 눈을 맞춰왔다.
“숫기도 없구, 말도 잘 안 하구, 먹기는 또 엄청 잘 먹구! 정말, 어떻게 보면 꼭 내 손자랑 똑같은 것 같어. 그러고보니, 우리 손자 녀석 있잖아? 고놈은 아직 각성도 안 했는데 머리가 참 좋아. 원래 머리가 좋은 건지……”
 사장은 더 신나는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듯 손자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 대화할 상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송태원은 그 말을 가만히 들으면서 사장의 말을 곱씹었다. ‘그 사람들하고 좀 달라보여.’ 그는 다 마시고 빈 종이컵을 살며시 손에 들고 복잡미묘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감사합니다.”
 응? 다림질을 시작하려던 사장이 고개를 돌렸다. 송태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손자분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셨던가요? 하며 화제를 돌렸다. 또 다시 귀여운 손자 자랑을 시작한 사장님을 보며 태원은 느릿하게 숨을 뱉었다. 지금 이 상태에 잠시 머물러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며 손 안에서 종이컵을 살살 굴렸다. 조금만 더 앉아있자. 아직 휴가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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