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영혼은 태산과 같아서
제 아들이 편지에 이렇게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람은 쉽게 변해요.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이 그래요. 날개가 돋아난 듯 까마득한 곳까지 오르거나, 끝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일이 하루아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면 믿으시겠어요? 사람의 마음과 그것을 둘러싼 세상이 얼마나 격변하는지 설명하면 아버지는 분명 허황한 소리는 그만두고 네 몫의 일에 충실하라 하시겠지요. 아버지는 잘 변하지 않는 분이셨고, 아버지의 세계도 그랬으니까요. 철모르던 시절에는 아버지가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그렇게 말해 주었지만 사실 전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자아낼 수 있는 기적은 사소해 보일 만큼 작았고, 그게 제 그릇의 한계라는 것을 저 또한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기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대단한 기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이 이 세상을 통틀어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없지 않습니다. 저는 변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대단한 변화를 이끈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분리수거를 하는 손길조차 단정합니다. 목이 살짝 늘어난 티셔츠 차림을 볼 수 있다는 건 아마도 저 같은 사람들에게나 허락된 소소한 특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병과 종이, 스티로폼과 페트병을 고심해서 분리하는 모습을 보니 자그마한 웃음이 났습니다.
각성자 관리실의 송태원 실장님은 저희 아파트의 주민이십니다. 송 실장님이 송 실장님이라고 불리기 이전부터 저희는 이웃이었지요. 저는 이 오래된 아파트가 처음 생겼을 때 분양받은 첫 입주민이었고, 송태원 실장님은 나이든 할머니가 양로원으로 거처를 옮기시게 되면서 내어놓은 집에 들어오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자신에게 무척이나 엄격한 공무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단정하고, 성실하면서도 어딘가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지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의 인상을 보고, 그 사람의 영혼이 어떤 흐름으로 움직이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거든요.
상급 헌터의 삶은 우리네 사는 모양과는 사뭇 다르다지요. 굳이 현실적인 예시를 하나 들자면 아무래도 금전적인 단위가 다르다는 점일 겁니다. 가뭄에 난 콩처럼 자란 첫째는 얼마 전 B급 판정을 받았습니다만, 그만큼만 되어도 벌써 우리와는 다른 미래가 열린 듯하더군요. 그러니 A급은 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아무렴 S급은요. 드라마나 영화 속 사람들의 화려한 삶을 보며 본인의 삶이 가진 초라함을 한 겹씩 들추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니, 저는 그들을 보고도 그리 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다른 세계의 삶이라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송 실장님은 달랐습니다. 하루아침에 다른 삶으로 가는 문이 열렸음에도 실장님은 이사하지 않으셨지요. 그저 당연한 것처럼 같은 아파트에서 쭉 지내셨습니다. 든든한 상급 헌터가 거주하는 곳이니 예기치 못한 던전 브레이크나 의외의 상황으로부터 안전할 거라는 소문이 돌면서―다른 이도 아닌 ‘송태원’이었으니까요.―일대의 땅값이 조금 오르기도 했습니다만, 정작 그 이유가 된 실장님은 그런 자잘한 소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셨습니다.
다른 세계의 사람이 눈앞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볼 때의 기분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못 됩니다.
“9층 엘리베이터 쪽 끝 집에 사십니까.”
“서향집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맞습니다.”
분리수거를 마치고 빈 장바구니를 반듯하게 접고 있던 저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안사람도 저도 사교적인 편이 아니고, 첫째는 일이 바빠 집에 잘 오지 않는 데다가 둘째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학교나 학원, 놀이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 테니까요. 이웃 주민들 사이에서도 저희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존재감이 희미한 이웃이었을 텐데 다른 이도 아닌 실장님이 저를 알아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낮고 중후한 음성은 오만하지도, 고압적이지도 않았습니다. 특유의 무게감은 사람을 주눅 들게 하기보다 그 자신을 무척 단정하게 절제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본디 어떤 규율로 쉽게 가둘 수 없는 성질을 타고났음에도 제 몸집에 견주자면 터무니없을 만큼 작은 틀 안에 스스로 들어간 이.
저는 얼떨떨하게 되물었습니다.
“어떻게 알고 계십니까?”
“그 댁 아드님께서 얼마 전에 제게 젤리 한 봉지를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막내 이야기인 모양입니다. 저는 조금 무안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아직 어려서요. 휴일에 형이 와서 TV를 볼 때 언뜻 보이는 실장님의 모습을 보고, 크면 송태원 실장님처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그랬던 모양입니다.”
“과분한 칭찬입니다. 마땅한 사람이 되도록 분발해야겠군요. 그게 아니어도….”
“아니어도요?”
“지난번에 엘리베이터에 못 탈 뻔했던 것을 기다려 주셨지요.”
그건 분명히 제 이야기였을 겁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안사람이나 아이들은 엘리베이터에 타면 늘 닫힘 버튼에 손을 올려두다시피 했지만, 별달리 급한 일이 없다면 저는 문이 자연스레 닫힐 때까지 기다리거나 인기척이 들리거든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곤 했던 까닭입니다. 그런 식으로 엘리베이터를 탄 이가 제법 되었고, 분명 그중에는 실장님도 계셨을 겁니다.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이란 대개 비슷비슷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사소한 일 중에서도 더욱 사소한 일입니다. 특별하고 격정적인 삶을 사는 S급은 물론이고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사소할 만큼요. 하지만 그는 아주 특별한 일을 말하듯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늘 가지고 다니던 차를 수리 맡긴 탓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애매해서 지각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도와주신 덕택에 딱 맞게 갈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다소 송구해 보일 만큼 작은 빨간색 경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주민들의 소소한 화젯거리기도 했습니다. 불편할 텐데도 그런 걸 가지고 다니다니, 어지간히도 검소하신 분이라는 생각도 종종 했습니다. 그나마도 고장이 났다니요. 필시 던전 브레이크를 막으려 애쓰던 차에 사고라도 나신 게 아닌가 걱정이 조금 들었습니다.
송태원 실장님은 역시 특별한 사람입니다. 다른 S급 헌터라면―예를 들자면 같은 S급인 세성의 성현제 길드장님 같은 사람 말입니다.―당장 몰 수 있는 고급 자가용을 열 대는 가지고 계시지 않았을까요. 하다못해 다른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번거롭고 싫어 택시라도 탈법하지만, 그는 차를 사용할 수 없는 때면 버스며 지하철을 타고 부지런히도 다니곤 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커다란 지하 마트에서 식재료를 고르는 모습을 보았다던 사람들도 제법 됩니다.
“별말씀을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얼마 전 던전 브레이크 때문에 고초를 겪으셨을 텐데요.”
“예기치 못한 사건이어서 시민들이 많이 당황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으니 걱정하셨겠군요. 해당 건은 잘 해결되었으며, 정부 차원에서 피해 복구 중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실장님의 눈가 밑이 거뭇하게 가라앉은 것도 같습니다. 필시 며칠은 꼬박 야근하셨을 테지요. 공직자의 삶도 순탄치 못한 건 별수 없나 봅니다.
“힘드시겠습니다.”
“누구나 다 이렇게 살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실장님의 고생이 없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 말에 그의 까만 눈동자가 저를 가만히 담았습니다.
“대개 이 정도는 S급이니까 괜찮겠지, 라는 말을 하던데요.”
“상급 헌터도 사람이니까요.”
저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비교하는 것 자체가 다소 우스울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희 첫째도 상급 헌터랍니다. 저희 같은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는 까마득하고 특별한 곳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닌 것도 아니니 마냥 순탄키만 하겠습니까. 예로부터 일장일단이라는 말이 있지요. 빛이 드는 곳에는 그림자도 지는 법인데, 사람들은 대개 빛에 눈이 멀어 그 뒤로 길게 늘어진 어둠을 보지 못합니다.”
혹자는 그랬습니다. 송태원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서, 이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채로 남겨진 거라고요.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달라도 한참이나 다르지요. 그가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고요? 천만에요. 그는 선택했습니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택이 될 수 없나요?
세상은 변합니다. 날이 갈수록 빠르게 변하지요. 정보라는 것이 화폐처럼 취급되는 세상이어서, 기술이 사회의 격을 높이고 낮출 수 있게 되어서, 이 세계에 던전이라는 것이 나타나면서 세상은 한낱 개인의 눈으로 다 파악할 수도 없을 만큼 격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거센 물살에서 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 호된 흐름에 맞서면서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큼 대단하고 의지 강한 일이 있을까요? 변하는 것이 있으면, 변하지 않는 것도 있기 마련일 텐데요.
송태원은 정체하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그의 의지가 곧 균형을 만든다고요. 그 같은 사람이 있으니 이 세상의 다양성이 살아 있으며,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맞물린다고요.
물론 그가 유일한 정의라고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제 세상의 절대적 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이 세계의 선의와 정의를 대표하는 이는 아닙니다. 다만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사회의 어떤 부분을 떠받치고 있으며, 그게 안전이라는 이름의 혜택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평범한 척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그 나름의 꼬인 속이나 상처, 남모를 상처 같은 것이 있겠으나 그것이 송태원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거대한 격변 속에서도 우뚝 설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입니다. 태산처럼 변함없는 그는 지나친 것을 멈출 수 있고, 바로잡을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을 찾아낼 거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늘 고생해 주시는 것, 알고 있습니다.”
제 아들이 편지에 이렇게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돼요. 마수 사육소만큼 많은 헌터가 오가는 곳이 없을 거예요. 특히 대장장이 유명우 헌터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오가는 사람들은 그의 환심을 살 만한 다양한 소문을 가지고 오기 마련이에요.
최근에는 한유진 소장님이 검은 양을 키우고 계세요. 송태원 실장님의 마수로 들어갈 녀석이라고 하던데, 공직자법 때문에 받으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렇게 정성을 다하시는데 어떻게든 받아 주시지 않을까요? 저번에 관련 프로그램을 보니까 마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던전 공략 속도가 하늘과 땅 차이라던데, 송태원 실장님 소속 마수가 있어야 공사를 처리할 때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이건 그저 어깨너머로 들은 이야긴데요, 송태원 실장님이 검은 양 이름을 송태산으로 하길 바라신다나 봐요. 실장님답지 않나요?
태산이라니,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제가 얼마나 한껏 웃었는지는 안사람밖에 모를 겁니다. 정말 실장님다운 이름 아니겠습니까? 숱한 계절 속에서도 끝내 푸를 그의 마음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송태원의 영혼이 태산과 같다면, 그의 삶은 그 태산에 나무를 한 그루씩 심는 일일 것입니다. 고되고 지루할 테지요. 변하지 않는 풍경 속에서 마음이 수없이 깎여 나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알아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게 당신에게 보상이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아주 높은 곳에서 그간 온 길을 돌아보면 어떨까요.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올라와 버린 그의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떨까요. 지평선과 수평선처럼 푸르고 길게 이어진 나무의 물결. 청량한 숲의 냄새와 바람에 따라 흘러가는 나무의 속삭임이 영혼에 곳곳이 스며들겠지요. 그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디 내일은 실장님께 큰일 없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있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은 견딜 수 있으니까요?”
제 물음에 그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여름처럼 푸르고 바다처럼 깊은 희미한 미소에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요. 그 같은 사람이 있으니 우리 같은 느린 사람들도 그 불변을 이정표 삼아 이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는 거겠지요.
“양 말입니다.”
실장님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알았냐는 시선으로 저를 잠시간 바라보다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입을 다물었습니다. 첫째에게서 들었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지요.
“이름은 꼭 실장님께서 지어 주세요.”
“…저는 그런 데 재주가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어차피 당신과 함께할 마수인걸요.”
그러니 그의 영혼은 태산太山과 같아서,
이 세상의 변치 않은 푸르름이 되겠지요.
<그의 영혼은 태산과 같아서>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