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상(斷想)
태원은 고작 2년차의 순경이었다. 파출소 내의 최하 말단에 가까운 2년차.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바람이 불던, 연두색 형광조끼를 차고 무전기와 테이저 건으로 무장한 채로 음주 단속이나 주변 주택가의 순찰을 도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드라마틱한 사건은 딱히 없었다. 이 곳은 사람이 많은 번화가도 아니고 주택가에 인접한 곳이라 커다란 사건은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사건이 없는 편이 여러모로 좋은 거긴 하지만 경찰이 되기 전, 새벽까지 공부를 하면서 꿈꿔왔던 일과는 사뭇 다르긴 했다. 하지만 바로 맞고참인 안경사도, 파출소장 아래에서 최고참인 한경위도 조용한 게 좋은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파출소가 절간처럼 조용했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새벽이 되면 주취자들이 파출소를 점령하고 드러눕거나 민중의 지팡이가 어쩌고저쩌고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가 빈번했다. 오늘도 거나하게 취한 양복 입은 남자가 무전취식으로 신고를 받고 파출소로 인계되었는데 오늘따라 더 간덩이가 부었는지 파출소 내에서 제일 덩치가 큰 태원에게 덤벼들더니 뺨을 올리고 큰소리를 쳐대고 있었다.
“어디 새파랗게 어린노무시키가 눈알을 똑바로 뜨고 바락바락 소리를 쳐? 어? 너, 이 개노무새끼. 눈 안까러?”
매일 밤 잡혀 오다시피 하는 남자의 손은 제법 매운기가 있었다. 술에 취한 게 아니라 헛손질을 하지 않았다면 태원의 볼은 이미 부풀어 올랐을지도 몰랐다.
“선생님. 자리에 앉으십시오.”
단단한 목석같기로 유명한 태원의 이마가 좁혀질 정도로 남자의 행패는 가관이 아니었지만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선임자들은 남자가 왜 저렇게 되어야 했는지를 알고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기에 좀처럼 손대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남자를 훈계하려고 마음을 먹는 건 늘 태원 뿐이었고 남자의 행패는 고스란히 태원에게 돌아오곤 했다. 오늘처럼 손찌검을 하는 경우는 꽤 드물긴 했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다. 남자는 태원이 이 곳으로 발령 나기 전부터 파출소의 새벽 단골손님이었다고 했다. 다들 포기하고 상대하지 않으려는 남자를 태원만이 정론을 내세워 꼬박꼬박 훈계를 하다가 욕을 먹고, 간혹 매를 맞거나 얼굴에 침을 맞았다. 그 난리를 부리다가도 술이 깨면 남자는 아주 깍듯하게 사과를 하고 파출소 문을 나섰다. 그 남자가 돌아가면 안경사는 매번 왜 쓸데없이 일을 키우냐며 태원을 나무랐고, 한경위는 그저 한숨만 길게 뿜곤 했다. 하지만 아침에 정신을 차린다고 해서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인간을 그냥 두고만 봐야 한다는 것은 태원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런 그에게 머리가 굳었다고 다들 뭐라고 하지만 태원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실행하는 것을 주저해 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감은 채로 과거를 떠올렸던 태원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성격이 두루뭉술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혀를 내두를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며 감았던 눈을 느릿하게 뜬다. 눈앞의 참사에 그저 가벼운 한숨만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던전이 크게 터지는 바람에 협조를 요청했더니 인간 같지 않게 날 뛴 남자가 주변의 건물을 초토화 시켜버렸다. 평소 같으면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태원이지만 이제 조용히 한숨을 갈무리하며 보고서의 초안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만 있었다.
“요즘 송실장이 너무 조용해서 재미가 없는데.”
“그러실 것 같아서 조금 유들유들해지기로 마음먹은 참입니다.”
건조한 태원의 대답에 마주한 금빛의 눈이 재미없다는 듯 눈살을 가볍게 찌푸린다. 하지만 남자는 모른다. 남자가 돌아가고 난 후 태원이 작성할 보고서에 세성 길드에게 청구할 손해배상에 대한 계산을 이미 끝내둔 상태라는 것을. 저 사람 같지 않은 자에게 굳이 정론을 들이대 봐야 희롱이나 당할 뿐이라는 것을 근 5년간 이미 여러 번 겪어서 알고 있었다. 굳이 말을 섞을 필요 없이 조용히 서류로 처리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어디냐 싶었다. 가끔 저 남자의 금색의 눈을 마주하고 있자면, 그 때의 새벽들을 떠올리게 된다. 가끔은 내버려두기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 그 주취자도 저 남자처럼 조용히 재미없어하면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 돌아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태원은 다시금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그리운 형광색 조끼를 껴입고 익숙한 경광봉을 손에 들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모든 것이 꿈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뜬 태원은 곧 빠르게 몸을 움직여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을 그리워 해봐야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뭐라도 직접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 위해 움직이는 편이 났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