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우하라
꼭 모든 걸 짜 맞춘 듯한 그런 날이 있다. 마치 신과 같은 자가 자신을 불우하라 외치는 듯한 하루. 송태원은 그런 하루가 당연한 것처럼 살아온 남자였다. 많은 이들이 신을 믿었으나 송태원이 감히 신을 믿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불우하라, 불우하라, 불우해…….
누군가 그리 귓가에 속삭이는 듯해 송태원은 이따금 우두커니 서서 제 발치를 한 번 보고 손을 쥐락펴락하며 실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불우가 거기 있는 듯했다.
“S급들은 과거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좋을 일 있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마수 사육소 일로 헌터 고용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하러 온 한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꼼꼼하게 적어 내려가는 보고서를 지켜보던 송태원이 답했다. 머리를 박고 서류를 채워 나가던 한유진이 퍼뜩 고개를 치켜들었다. 송태원의 표정은 여느 때처럼 무덤덤했다.
“실장님 얘기신가요?”
“…….”
“사실 성현제 씨한테도 물어봤는데 말입니다.”
한유진이 제 코끝을 긁적였다. 계면스러운 모양이다. 한유진이 함부로 타인의 얘기를 전할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송태원은 잠자코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저 웃고 마시더랍니다. 하긴…… 그 양반은 어린 시절이 상상이 안 되지 않나요.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것만 같아.”
투덜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송태원은 잠시 다른 생각에 잠겼다. 이를테면 자신의 재미없던 일상들이다. 매일같이 똑같은 시간에 출근에 오전 업무 일지를 쓰며 사사로운 민원들을 처리하고, 점심 때 무얼 먹을까 외치는 선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채소가 많고 담백한 거라 답하던 날. 그러면 선임은 씩 웃으며 육개장을 시키곤 했다.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네 건 여기 있다며 철가방에서 뒤늦게 콩나물 국밥을 꺼내 주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자신이 스스로 망친 과거임을 송태원은 알고 있다.
‘송태원. 각성자 신고했다며?’
세상이 달라진 날이었다. 송태원은 주저하다가 헌터 협회에 가서 각성자 신고를 하고 등급을 측정했다. 스며드는 약탈이라는 이질적인 스킬을 어찌할 바 모르다가 조심스럽게 자문을 구하러 간 게 S급이라는 멍 든 훈장만 달고 돌아오게 되었다.
‘좋겠다, 좋겠어. S급이라지? 상부에서…… 네 소속을 논의하더라.’
‘…….’
‘이제 송태원이. 내 머리 위에 있겠네.’
선임은 승진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상부의 줄을 타려고 했고 그걸 위해서라면 매일같이 야근을 해도 괜찮고, 술자리를 따라가 못 마시는 술을 진탕 마셔도 괜찮다고 얘기했다. 이런 바닥 공무원으로 남지 않을 거라며 으스대던 선임의 모습을 기억한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새끼야. 좋겠다. 젊은 나이에 아주 최고층에 앉겠네.’
제 앞 모니터에 팔을 걸친 채 이죽거리는 선임을 어찌할 바 몰라 송태원은 가만히 얼굴만 굳혔다. 그러자 뺨을 툭툭 치며 선임은 웃었다.
‘웃어 새끼야. 내가 못할 말 했냐?’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보려고 했으나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표정이 엉망이었는지 선임은 그걸 보며 웃었다. 그 또한 체증 같은 답답함이 얼굴에 어려 있었다. 그래서 송태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행위가 부당하다고 논하지 않았다.
‘태원아.’
‘예.’
‘너 그냥 이 일 그만두면 안 되냐? 너 같은 놈은 길드도 들어갈 수 있잖냐.’
그때는 막, 성현제가 제 아래 모일 헌터들을 소집하던 중이었다. 몇몇 헌터들이 파격적인 대우에 눈이 돌아갈 때였고, 송태원은 그에 관심이 없었다. 선임의 얼굴은 기이했다. 검은 눈동자가 무언가 열망하는 듯했다. 송태원은 깨달았다. 선임은 제게…… 스스로의 미래를 비춰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갈망하되, 가질 수 없는 각성자의 세계를.
‘……전 그냥. 지금 그대로가 좋습니다.’
‘한심한 새끼.’
일방적인 비난에도 말 한 마디 못한 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는 이의 기대를 부담스럽다 말하기 어려웠다. 선임은 그날 이후로 송태원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송태원이 올린 결재서는 사인란이 빈 채 그대로 놓여 있기도 했고, 매 식사 때마다 식사는 한 사람 몫이 모자랐다. 유치하다 싶을 행동에 몇몇 경찰들이 송태원의 눈치를 보았으나 송태원은 묵묵히 버텼다.
‘S급이라는데…… 이러다가 우리만 나자빠지는 것 아냐?’
‘몰라 인마. 김형진 그 자식 성격이 하루이틀 나쁘냐.’
‘애휴…… 이게 다 뭔 꼴이냐. 경찰소 안이 정치로 난리다, 난리. 송태원 그 자식한테 줄 서겠다느니 어쨌다느니.’
‘……이런 꼴이면 지가 눈치껏 나가야지. 눈치도 밸도 없는 놈.’
‘그래도 그 녀석이 나쁜 건 아니지. 좋은 녀석인데… 상황이 나쁜 거지.’
화장실을 갔을 때, 열린 창문 너머 뒤 공터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다. 희미하게 풍겨오는 담배 냄새를 보아 담배 타임이라도 가지는 듯했다. 송태원은 이를 악문 채 벅벅 손만 씻었다. 깨끗한 손을 또 비누칠을 하고 다시 물로 씻어 내고 또 비누칠을 하고…….
그리고 다음 날, 송태원은 정부를 찾아가 제 소속의 자리를 달라고. 그리하여 제 아래로 사람을 꾸려 달라고.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고 싶다 말했다. 자신을 효율적으로 써 달라며, 필요하다면 목숨을 경시해도 묵묵히 받아들이겠노라 말했다.
그랬던 송태원에게 주어진 자리가 지금의 자리였다. 헌터들을 통제하고, 그리하여 혹시라도 재난 사태가 벌어지면 목숨을 바쳐 평화를 지킬 것. 허울 좋은 자리였고 그만큼 명예는 따라오지 않는 허름한 위치였다. 그러나 송태원은 그것이 만족스러웠다. 제게 송곳 같은 능력은 필요없었다. 낭중지추라고 했으나 어딘가에 자신을 꽁꽁 숨겨 둘 수 있길 바랐다.
“다 썼습니다. 이 정도면 되는 거죠?”
“…예, 이 정도면 문제되는 건 없습니다.”
“정 걱정되시면 한 번 들리셔도 괜찮아요. 일을 만들어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실장님은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되시겠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얼굴을 마주 보며 송태원은 잠시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와 해야 할 일, 그리고 허락될 것과 허락되지 않을 것들. 많은 사람들과 남은 인간관계, 그것도 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면…의 남은 인연들.
“실장님의 과거도, 별로셨나요?”
송태원은 눈을 깜박였다. 손을 쥐락펴락한다. 여전히 끈적하게 달라붙은 과거의 잔재들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들은 송태원을 속박하려 들되, 그를 억압해 고개 숙이지는 못하는 기억들이다.
“……다음 주 중으로 마수 사육소로 찾아뵙겠습니다.”
“예에… 뭐. 편하실 때 오세요. 전날까지 연락 주시면 저도 준비해 둘게요. 아 참. 화산흑양도 좀 가져가시고요.”
불우하라, 불우하라, 불우해…….
그리 속삭이는 말이 끝없이 뒤를 쫓아도 그가 송태원으로서 건재할 수 있는 건, 그래도 그를 지탱하는 과거가 보통 사람의 것이기에. 그래서 송태원이 스스로를 괴물이라 생각하되 그래도 인간이었던 적이 있노라 스스로를 자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수고하세요.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괜찮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송태원은 언제나처럼 아무렇지 않게 버티고 설 테다. 제자리를 지키는 이처럼 그랬다. 그는 닳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군다. 스스로가 소모된다는 걸 체감하면서도 묵묵하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 마른세수를 한다. 고난은 견딜 수 있는 만큼만 온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이번에도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도 괜찮을 테다. 버티고 서서 다가올 앞으로의 불우도 맞이하리라.
그러니 감히 불우가 그를 들여다보더라도 괜찮아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