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취인 불명
*약간의 메타적 요소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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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정한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어린 저를 앉혀 놓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저 강하거나 똑똑한 사람보다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라고. 그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렸던 제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누군가를 지키거나 감싸려면 힘이나 머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꿈은 경찰이었거든요. 다섯 살 적에, 길을 잃고 우는 저를 끝까지 보살펴 주셨던 순경을 무심코 동경했습니다. 흔한 계기이지요. 십 년이 넘도록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다가 대학과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어서야 다시 떠올렸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말입니다. 진심이 아니었단 뜻은 아닙니다.
꿈은 이뤘습니다. 경찰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시험에 붙었습니다. 저도 순경이 됐습니다. 저도 길을 잃은 아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돌봐 주곤 했습니다. 무거운 걸 나르는 어르신을 돕고 무나 배추 같은 걸 받기도 했습니다. 그걸 들고 파출소로 돌아갔을 때 모두가 웃던 게 떠오르는군요. 그럴 땐 제가 다정한 인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싸움이 붙은 사람들을 말리는 일이나 취객 상대는 피곤했습니다. 그럴 때마저 다정하긴 힘들더군요. 그래도 애썼습니다. 다정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다정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본래 어려운 건지 제게만 어려웠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나 오래 만나지 못한 여자친구 셋, 대학 동기들, 군대 사람들, 경찰 시절 동료들이 모두 제게 한 번씩은 말하더군요. 참 무뚝뚝하고 목석같다고. 무정하고 무심하단 말을 조금쯤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한 것은 아닐지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무정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마냥 무심하기에는 전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썼습니다. 제가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이, 가끔은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온전하고 안전한 삶을 살길 바랐습니다. 제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인간의 형상을 너무 자주 떠올렸습니다. 그런 일은 쉽게 버릇이 됩니다.
저는 올바른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경찰이란 것이 마냥 순탄한 일이 아닌 만큼 동료를 위해 상복을 입는 일이 생기지 않을 순 없었습니다. 다만 모든 죽음이 영광스럽진 않았습니다. 각성하기 몇 달 전 일입니다. 선배 하나가 뒷돈을 받고 공금을 횡령하다 들통이 난 바람에 처벌을 향한 두려움과 수치심으로 자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생전에 그를 알던 사람들이 찾아와서는 예의가 있으니 참는단 얼굴로 넌지시 그를 욕했습니다. 상복 차림으로 귀가하니 아버지께서 ‘너는 그러지 말아라.’ 수십 번을 당부하며 손찌검을 하셨습니다. 규율을 어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저는 그날 더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철저히 규칙 아래 저를 가두고 살기로. 무언갈 어긴 사람으로 남은 채 죽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인간이란 정확히 무엇인지 결론이 쉽게 나지 않았습니다. 뇌물을 받지 않으면 올바른가?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 올바른가? 선행을 거듭하며 봉사를 베풀면 올바른가? 올바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선두에 서서 이끌면 올바른가? 그래선 안 될 것들을 막고 악의 뿌리를 자르는 데에 힘쓰면 올바른가? 당신은 아십니까? 과연 어떤 인간을 올바르다고 부를 수 있는지. …… 묻고 보니 이상하군요. 누가 이걸 읽는다고.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일에 휘말려 동료를 잃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약한 사람들을 착취해 먹으려 드는 기득권층에 대항하는 움직임이라든지, 뒤가 깨끗하지 못한 기업의 횡포라든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 죽음을 위한 상복은 서글프되 제법 자랑스럽고 명예롭게 여겨지곤 합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올바른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까? 만약 저도 대의를 위해 죽었더라면 올바른 인간으로 기억되는 겁니까? 그렇다면 올바름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겁니까?
저는 현명한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제가 바라는 만큼 충분히 다정해지지 못한다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때를 알아차리고 몇 걸음 물러설 때를 알 수 있는 만큼은 현명하고 싶었습니다. 매사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굴 수 없다면, 최소한 악인이 되지 않을 방법을 알 수 있는 정도로는 현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단순히 미리 상정한 기준을 채우지 못한 걸지도요. 사람과 사람이 섞여 사는 일에 상처와 실수가 전혀 없을 순 없단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래도 단숨에 자멸감이 되어 저를 덮치곤 했습니다. 포기하지 못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왜 저는 현명한 인간이 되기를 단념할 수 없었을까요. 나이를 조금씩 더 먹을수록 더 간절하게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많은 일을 보고. 그럴수록 더욱 필요해졌으니까.
빈 포션 병에 담아서 놓고 갈 편지를 쓰면서 이런 말을 하니 우습군요. 다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며 쏟듯이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했지만 그런대로 건전한 해소가 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길 바랍니다. 이날 이후로 다시 곱씹지 않고 싶은 것들을 버리고 가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이것 또한 바람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편지를 써서 두고 가야만 공략이 완료되는 던전이라니, 리셋된 뒤에 이 편지는 어디로 갈까요. 죽은 몬스터나 파괴된 지형지물이 어떻게 되는지도 종종 궁금해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아선 안 되는 사실이리라고 짐작하고 말죠. 알고 싶지 않습니다. 호기심을 아주 잠깐 가지기만 해도 충분히 뒤틀리는 기분이 들고, 머릿속이나 뱃속이 긁히는 느낌이 들어서요. 간단하게, 이질감이라고 합시다.
이 세계는 너무도 작위적이란 생각을 자주 합니다. 누군가의 손으로 구축되고 또 놀아나는 것 같다고도. 마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이미 정해진 여로가 그의 손으로부터 선명한 형태를 얻어야만 이 세계가 이어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각본이나 소설 속에 살듯이……. 헛소리 같겠지요. 압니다. 이질감을 설명하기 위해 수없이 떠오르다가 죽는 생각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짓거리가 도움이 됩니다. 제가 제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 삶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어서요. 던전 안에 있는 것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건 오로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경우입니다. 그러니까 이 편지가 어딘가에 닿는다면 당신은 이 세계의 것이 아니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세계를 지켜보고 있는 걸까요. 당신의 눈에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어떤 인간이고 싶었는지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사실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하니까요. 무언갈 어긴 사람으로 남은 채 죽고 싶지 않다고 했지요. 제가 어기지 않으려 했던 것은 정말 규칙 하나일까요. 이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각성 이래로 저는 인간성을 어기지 않는 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정하지도 올바르지도 현명하지도 못한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떠한’ 인간이고 싶은 게 아니란 겁니다. 적어도 이제는.
어느 경계를 너무 오래 바라본 탓이 큽니다. 가르는 행위 자체에 몰두하다 보면 무엇과 무엇을 가르기 위한 일이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맙니다. 무얼 분간하기 위한 골몰이었나 돌이키기 위해 고개를 들면 매번 흉하고 끔찍한 것을 봅니다. 그것은 시꺼먼 칠을 하고 시뻘건 눈을 하고 아귀나 손아귀를 벌립니다. 저를 잡아먹으려는 게 아닙니다. 다만 차라리, 저를 먹었으면 합니다. 제가 아닌 다른 것이 그것에게 먹히는 광경을 상상하면 숨이 멎을 만큼 징그럽고 또 죽고 싶을 만큼 섬뜩합니다. 그것이 작고 약한 것을 해친 다음 제가 기꺼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멸시와 증오뿐일 걸 압니다.
이제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을 말이지만 저는 그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선배가 부러웠습니다. 한때이긴 했으나 분명히 부러웠습니다. 평범한 권총으로는 피 한 방울 흘릴 수 없게 된 이후에 말입니다. 왜 어머니와 동생의 사고 현장에 제가 없었는지 후회했고, 왜 아버지가 던전 쇼크로 목숨을 잃을 때 저는 살아남고 말았는지 통탄합니다. 저는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신에게 기대어 긍휼을 바라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이제는 그것만이 남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입 안이 씁니다. 그래서 부정합니다.
이 편지가 정말 당신에게 닿았습니까? 그렇다면, 찢어서 버리십시오. 당신은 제가 모르는 곳의 누군가일 겁니다. 저도 당신이 모르는 곳의 누군가이고 싶습니다. 단순히 어딘가의 발신인으로만 보이길 바랍니다. 당신이 저를 모르길 바랍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한 번은 내뱉고 싶군요. 버리듯이. 버리듯이 말입니다.
저는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괴물들이 활개를 칩니다. 그 집단의 한 축이 되고 싶지 않아서 발버둥을 쳤습니다. 무의미했지요. 처음에는 거리를 뒤덮은 몬스터들이었고, 그다음에는 그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처치하는 것들이었고, 그다음은 저였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흉한 것이 저를 구심점으로 모입니다. 무게와 빛을 먹어 치우는 까만 구멍 같습니다. 칼로 찌르면 날을 녹여 먹고, 총을 쏘면 총알을 삼키고, 모멸을 퍼부으면 물처럼 마십니다. 직선과 곡선의 경계선을 문질러 지워 버리고 점과 면을 구분하지 못하고 닥치는 대로 처먹습니다. 시종일관 배를 주린 짐승 같습니다. 그렇다면 날고기나 축낼 것을 왜 너무도 많은 걸 그다지도 포식하려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갈이 듭니다. 그러나 이를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무언갈 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야 한다는 말은 언제까지나 내치고 싶습니다. 굶주림마저 저를 죽일 수 없단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절망스러웠는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무엇이 저를 끝낼 수 있는지 여전히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집념입니다. 버릴 수 없는 것을 움켜쥘 때 저는 추해집니다. 미학은 제 몫이 아니라고 진작부터 여겼지만 역시 꼴이 사납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시 제 손으로 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저를 찢어서 버리세요.
저는 인간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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