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경찰의 일주일
*트리거 워닝: 살인, 시체 유기, 인육 간접 표현
형사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덕분에 그 하루는 끝나지 않은 어제 일 수도 있고, 앞으로 시작될 밤샘 잠복의 첫날일 수도 있다. 다행히 송태원의 오늘은 잠복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다고 아침이나 새벽에 일찍 끝난 건 아니지만 밤 9시에라도 끝난 게 어디랴. 자신의 오피스텔이 근처였던 그는 피곤한 몸을 풀어주듯 기지개를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동네 공터가 나오고 공터 입구에서 왼쪽으로 비껴가면 10분 거리에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 건물이 보여 서서히 긴장을 풀고 있던 그에게 또 다른 사건이 눈에 띄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그건 안돼..! 아이고, 이 몹쓸 놈..!! 아악!”
분명 퍽치기였다. 뒤에서 노인을 세게 밀어 넘어뜨리곤 그대로 할머니 위에 올라타 뒤에서 옆구리에 무언가를 찔러 넣었다. 한눈에 칼이라는 것을 알아본 송태원은 그들을 향해 달렸고 강도도 그쪽을 향해 뛰어왔다. 들고 있던 칼을 크게 휘둘러 송태원의 얼굴을 베려고 했으나 아래로 몸을 숙인 채 두꺼운 팔로 목을 가격한 그에 의해 목을 부여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송형사는 강도를 그냥 두지 않고 다리 한쪽을 잡아 비튼 후 할머니께 달려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 분을 먼저 챙기지 않으면 또 잃을 것만 같은 기시감이 느껴졌다. 기시감?
송태원이 감각을 미처 인지하기도 전에 그가 상태를 확인하던 할머니가 손을 들어 강도를 손가락질했다. 그놈은 한쪽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익숙하게 나르듯 뛰어올라 근처에 있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한 박자 늦게 송태원이 그쪽으로 뛰어갔으나 놈은 이미 시동을 걸고 출발했고 송태원이 건진 거라곤 놈의 얼굴과 멀어지는 오토바이의 번호판 숫자뿐이었다.
“야, 한형사야. 이 사건 강력 3팀으로 넘기고 송형사 퇴근하라고 해라.”
“예? 하지만 송형사가 이 일 맡고 싶다고‥”
“야, 정신 안 차려? 신입은 뭘 모르니 그런다지만 넌 3년차나 되어서 똑같이 헛소리할 거야? 잔말 말고 사건 넘겨.”
병원 복도 정수기를 향해 걸어가던 송태원은 비상계단 쪽에서 들리는 반장님의 호통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자신의 사수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그가 끼어들어 대신 답했다.
“싫습니다. 제가 맡겠습니다. 단순 강도니까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반장님. 혼자서라도 하겠습니다.”
“야, 송태원!”
“어차피 저 내일부터 3일간 휴가이지 않습니까. 휴가 반납하고 나와서 수사하겠습니다.”
“안돼. 난 안된다고 했어.”
“왜 안 됩니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 네 휴가가 단순 휴가야? 무기 밀수 매복하기 직전에 체력 관리하라고 주는 휴가야! 근데 휴가를 반납하고 수사를 해? 니가 지금 젊으니까 체력이 계속 샘솟을 거 같지? 착각하지 마! 당장 현장에서 너 하나 죽어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 안하지만 너 하나 뚫리면 무기 수십 개가 뚫려. 우린 그거 다시 수거하겠다고 남은 팀원들끼리 또 좆뺑이 쳐야 하고 거기다 네 장례식에도 가봐야겠지! 근데도 이게 간단하다고 생각하냐? 목 위에 달고 다니는 거 대가리 맞으면 나대지 말고 얌전히 집으로 가라. 이 사건은 강력 3팀이 맡는다.”
싸늘하게 쏘아붙인 반장과 그의 사수가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고 어둠 가운데 홀로 남은 송태원은 분노보다 앞서 무력감을 느꼈다. 제 눈앞에서 사람이 칼에 찔렸는데 자신은 그걸 해결할 때가 아니라니. 범죄를 수사하는데 적당한 때가 어디 있고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사건의 크기를 먼저 따져야 한다면 난 왜 경찰인 거지. 송태원은 지긋이 눈을 감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드러난 그의 눈에는 불복종만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근처 지구대로 향한 송태원은 자신의 경찰 신분증을 보여주며 오토바이 번호부터 조회했다. 서울 종로 아 5210.
“어, 이거 분실 처리되어 있는데요.”
“그래도 원래 주인의 집 주소는 남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의미 없을 겁니다. 이런 경우 90%가 훔친 거니까요. 여기 주소도 종로로 되어 있네요.”
주소도 번호판도 종로지만 이곳은 강남이었다. 종로에 사는 놈이 일부러 이곳까지 와서 날치기를 했다기엔 그 공터는 동네 사람들만 알만한 주택가 사이에 숨어 있는 곳이었다. 그럼 종로는 아니고,
“이 근방에서 오토바이 날치기 사건 신고 들어온 곳들 cctv 자료 있습니까? 다른 지구대에도 연락해서 자료 좀 넘겨주십쇼.”
“알겠습니다. 일단 저희 쪽 자료는 저쪽 cctv 자료실에 가서 보시면 됩니다. 다른 곳들은 연락해 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행히 다른 지역 영상까지 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까다로웠다. 헬멧이나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에 초짜일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놈은 꽤 치밀했다. 오토바이는 CCTV가 보이는 곳에 세워두고 범행은 사각지대에서 행하여 후에 등장하는 물건이 날치기 된 물건이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증거를 찾기 위해선 놈의 주거지를 찾아야 했다. 일단 어찌어찌 CCTV 영상을 짜 맞춰 놈의 최종 목적지로 추정되는 한강 부근까지 찾아왔다. 여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남은 건 단 하루.
송형사는 잘 사용하지 않는 업무용 경차를 타고 근처 한바퀴를 돌았다. 특별한 특징 없이 컨테이너 두 개와 다리 근처에 널린 거지들뿐이었다. 거지들 사이에 숨어 있을 행색은 아니었으니 컨테이너에 먼저 접근한 그는 문에 다다를수록 아주 기분 나쁜 악취를 맡았다. 쓰레기 냄새나 오래된 곳에서 나는 흙먼지 냄새라기엔 조금 다른, 마치 동물 썩은 내 같은 것이 나고 있었다. 문이 굳게 닫혀 뒤쪽에 달린 창문들을 흔들어 본 그는 그중 열리는 창문 하나로 역시나 아주 더러운 것을 목격했다.
바닥 전체에는 신문지가 깔려 있었고 한쪽 구석 책상 위에는 비닐 랩에 싸여 있는 붉은 고기 같은 것들이, 그 옆 빨래 건조대에는 대충 물세탁만 한 것으로 보이는 붉은 자국이 가득한 아동용 옷. 그리고 반대편 구석에는 커다란 검은색 쓰레기봉투가 두어 개 쌓여 있었다. 누가 봐도 단순한 컨테이너는 아닌 것 같은 음산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송태원은 최대한 신속하게 차를 타고 의심 사지 않을만한 주차장을 찾아 차를 대놓고 총과 호신봉을 챙겼다. 지원을 요청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한 놈이든, 패거리든 자신이 잡아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던 송태원은 혹시나 그새 놈이 왔다 갔을까 싶어 황급히 컨테이너로 돌아왔다. 앞으로 30시간. 그 시간 내에 놈이 나타나야만 한다.
몇 시간 후, 자정이 되기 직전에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놈일 것이다. 최대한 조용히, 창문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근처 가로등에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각도로 몸을 틀어 숨죽인 채 놈이 안으로 들어가길 기다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빠르게 총을 장전한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송태원과 마주치자 강도는 급히 허리춤에서 맥가이버 칼을 빼들었지만 송형사가 벽을 향해 쏜 공포탄 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면 쏘겠습니다. 손 머리에 짚고 뒤로 도십쇼.”
“하… 여긴 어떻게 찾았어? 분명 관심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강도가 여유롭게 웃으며 물었지만 송형사는 대꾸하지 않고 총을 고쳐 잡았다. 그의 한결같은 모습에 졌다는 듯 뒤로 돌은 강도를 체포하고 그는 강력 3팀과 감식반을 요청했다. 물론 그 새를 못 참은 송형사 덕분에 증거가 우수수 쏟아졌지만. 그의 손에 파헤쳐 진 쓰레기봉투에선 시신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주 어린 아이들. 송형사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보던 강도는 낄낄 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거? 다 쓸모없는 애들이었어. 부모도 없고 돈도 없는 거지 애들. 그래서 그런지 먹을 거 사주니까 금방 따라오더라? 기브 앤 테이크지. 내가 먹을 걸 사줬으니까~ 나한테도 먹이가 되어주는? 먹이사슬이라는 게 원래 잔혹한 법이잖아.”
송태원은 어금니에서 까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남자의 얼굴을 박살 내고 싶었지만 과잉진압 또한 처벌 대상이며 놈이 직접 죽였다는 증거가 아직 명확하지 않아 섣불리 때려선 안 된다. 그의 뇌를 관통하는 여러 가지 지식들 덕분에 그는 습관적으로 차분하게 행동했다. 속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여러 번 죽이면서.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 또 다른 송태원의 손에 의해 그는 총을 맞고 발로 채였다. 경찰들이 도착하는 몇 분 동안 그가 몇 번이나 죽었는지 셀 수조차 없었지만 송태원은 경찰의 탈을 쓴 허깨비일 뿐이니까 그래도 싸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임명장 수여식을 갖겠습니다. 강남서 강력 1팀. 송 태 원. 경감에 임함. 2019년 10월 17일. 서울 경찰청장 이 용 표.”
놈을 체포하고 3일 뒤. 특진 임명 수여식이 벌어졌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2년도 채 안 된 신입 형사가 특진. 하지만 그 특진이 당연할 만큼 큰 사건이었다. 아무도 몰랐던, 상상조차 못했던 아동 납치 및 인육 제조. 그리고 그 사건을 홀로 해결했다. 그가 해결한 방식이 어떻든 매스컴에선 화제가 되었고 경찰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그날의 주인공과 같은 팀원 중 수여식을 참여한 사람은 딱 한명, 반장뿐이었다.
“태원아, 좋냐?”
긍정적인 말, 부정적인 말투. 공존해선 안 되는 것이 융합되어 아주 기분 나쁜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송태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반장은 입도 뻥긋 안 하는 그가 더 아니꼬운 건지, 아니면 만만해서인지 점점 더 짜증 섞인 핀잔을 내뱉었다.
“지금 팀원들 다 부두에서 조폭 새끼들 잡겠다고 잠복하다 검거하겠다고 존나 뛰어다니고 있을 텐데 오늘 특진해서 좋냐고, 이새끼야.”
“아닙니다. 반장님.”
“아니기는. 하‥ 됐다. 그래, 너 착한 놈이다. 그러니까 휴가 기간 동안 음주운전 단속 좀 해라.”
특진 기념 일주일 휴가. 반장은 그 휴가를 반납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반장으로 승진할 동안 낯짝만 두꺼워졌는지 짜증 내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이 활짝 웃으며 태연하게 부탁한다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송태원은 그 협박 어린 부탁을 얌전히 받아들였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얌전히 음주운전 단속을 시작한 지 나흘째. 어느덧 월요일이었다. 음주운전 단속이다 보니 아침 일찍 출근하진 않지만 월요일 출근이라는 것이 그렇다. 매주 돌아오는데, 매주 힘들다. 체격 좋고 체력은 더 좋은 송형사도 생활패턴이 뒤집어진 생활 덕분에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 상태로 시내 사거리에서 교통정리 봉을 들고 한 명, 한 명 단속을 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횡단보도를 건너 그에게 다가왔다.
“이쪽으로 오시면 안 됩니다. 위험하니 돌아가십시오.”
“아유, 총각 고생한다 싶어서 내가 커피라도 주고 싶어서 그래.”
그에게 다가온 사람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셨다. 근처에 병원이라도 있는지 환자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해서 잠깐 생각하던 그는 마침내 기억해냈다.
“혹시, 그때 그 할머니 맞으십니까..?”
“맞아요, 이제 기억났구먼? 진짜 바쁜가 보네~ 그래도 총각, 고생 끝에 낙이 와. 총각같이 좋은 사람은 결국 행복해질거라우. 그러니까 힘내. 이거 꼭 마시고. 알았지? 그럼 나 갈게이~?”
할머님의 능청에 그는 살짝 웃은 것도 같다. 속으로는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덕담을 해주시니 조금 마음이 따뜻해지려는 찰나 쉬는 시간은 끝났다는 듯 무전이 울렸다.
“송실장님!!! 송실장님 일어나세요!!!”
“…송실장님‥?”
책상에 엎드려 있다 벌떡 소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얼굴을 든 송태원은 갑자기 몰려 있는 얼굴들에 놀라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을 차리려는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일입니까. …던전 브레이크입니까?”
몰려있는 사람들은 각성자 관리실 팀원들뿐만 아니라 마수 사육소에 한유진 소장, 해연 길드의 한유현, 박예림 헌터, 브레이커 길드장 문현아 헌터, 세성 길드장 성현제까지 대부분 중요한 일로 방문하는 사람들까지 얼굴을 보여 송실장은 큰일이 터진 것이라 추측했다. 덕분에 당장이라도 튀어나가려는 듯 일어난 그에게 사람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다.
“경찰의 날 축하드려요, 송실장님!!”
“축하하네, 송실장.”
“축하해, 송실장!!!”
“이건 저희가 직접 준비한 상입니다.”
팀원들 중 가장 직급이 높았던 A씨가 설명을 하자 옆에 있던 한 소장이 예림 헌터를 시켜 상패를 전달해주었다.
“…갑자기 이게 뭡니까.”
“송실장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나?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자네가 수고한 걸 나라가 몰라주니 우리라도 알아줘야한다.라고 저기 내 파트너가 말해서 말일세.”
“그‥ 매번 저 도와주시고 여러 번 살려 주셨잖아요. 그리고 원래는 팀원 분들이 구상한 걸 제가 주워듣고 도와드린 것뿐이에요. 좋은 팀원을 두셨네요, 송실장님.”
세성 길드장과 한 소장의 연이은 설명 뒤 기다렸다는 듯 팀원들이 외쳤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실장님!! 실장님 덕분에 저희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말에 송실장은 완전히 잊힌 꿈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그래도 총각, 고생 끝에 낙이 와.'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나름의 낙이라면 낙이라고 칠 수 있을 것 같아 송태원의 입가에 작지만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감사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옆에 두었군요, 제가.”
부디, 여러분들이 좀 더 오래 제 곁에서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