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 한 번에 천 원
최근 sns에서 크게 화제가 된 동영상이 있다.
동영상에 처음 비추어지는 건 책가방을 세 개나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었다. 책가방을 들고 있는 여학생도 책가방을 추가로 얹어주고 있는 쪽도 숨넘어가게 웃고 있어 무척 소란스러웠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아예 바닥에 무릎을 대고 웃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자기들끼리 무슨 내기를 했는지 있는 데로 올려보라고 시끄럽게 떠들었고 영상을 촬영하는 휴대폰 주인도 웃고 있어서 어지러울 정도로 화면이 떨렸다. 그러던 중 다섯 개의 가방을 매고 등을 거북이처럼 구부리고 있던 여학생이 삿대질을 하며 뒤를 가리켰고 동시에 화면이 정신없이 이동했다.
총알 같은 속도로 아파트 1층의 난간을 딛고 올라간 경찰이 팔 힘의 반동만으로 무려 4층까지 기어 올라가 베란다에 널어놓은 이불에 매달려 있던 아이를 다시 집에 들여보내는 광경이 비춰졌다. 미친 거 아니야? 뭐야, 영화 촬영이야-이후의 말은 묵음처리가 된 것이 아무래도 욕설 어린 감탄이 섞여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나라 경찰 썩은 줄 알았는데 쩐다! 라는 제목을 달고 페이스북에 개시 된 동영상은 수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열심히 전파되었다.
완전 치타네.
쩐다.
이런 경찰만 있으면 좋을 듯.
영화 찍는 줄;
경찰이면 누군지 알 수 있을 텐데 표창 줘야 하는 거 아님?
영화 액션씬 보는 것 같다.
3년 뒤에 관련 영화 나와 줄 듯.
빠른 판단과 대처로 사고를 막은 모습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고 급기야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동영상을 입수한 방송사들이 훌륭한 미담 촬영을 위하여 해당 파출소로 앞 다투어 뛰어왔다. 자기 앞에 내밀어지는 여러 대의 마이크 앞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이가 떨어질 뻔한 걸 봐서 반사적으로 뛴 것 뿐 입니다. 제가 아니라 누구라도 아이를 구하려고 했을 겁니다.' 라는 의인들이라면 누구나 배워온 듯 교과서 대답을 한 순경의 나이가 만으로 아직 20대였기 때문에 더욱 열풍이 거셌다.
“젊고 잘생기고 몸 좋고 마음까지 갖추신 우리 송순경~”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저를 부르며 다가오는 선배를 보고 송태원은 못 들은 척 귀를 막았다. 하지만 뻔히 다 보이는 파출소 안에서 감춰질 수도 없었고 도망갈 곳도 없었다. 민원인이라도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노려보았지만 길고양이 하나 지나가지 않았다.
“송순경을 위한 제육덮밥 대령이요~”
“...놀리지 마십쇼.”
일회용 용기의 랩을 벗기며 못마땅한 기색으로 답했더니 상대는 우리 송순경 삐졌냐고 맞은편 자리에 철제의자를 질질 끌고 와서 앉았다. 거기 민원인이 앉는 자리인데.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의지가 되지만 귀찮은’ 선배가 송태원 놀리기 스위치를 'on 쪽으로 올려둔 것 같으니 괜히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았다. 아무리 말해도 내가 상대나 해주나 봐라 라는 심경으로 입을 꾹 다물고 배달 철가방 안에서 반 이상 버무려진 제육덮밥을 숟가락으로 섞었다.
몇 번 콕콕 찔러보다가 가장 큰 고깃덩어리를 숟가락으로 노리는 등 여러 장난을 침에도 송태원이 묵묵히 자기 몫의 식사를 하기만 하자 이내 질렸던지 의자에 등을 기대고 낙새곱 덮밥을 슥슥 비볐다.
“공무원만 아니면 광고 찍어서 돈을 수백 벌었을 텐데.”
공무원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럴 마음은 없다. 카메라 앞에 서게 되는 건 불편하다. 짧은 인터뷰여도 자기는 못 보는 모습을 남이 찍어서 본다는 것이 영 꺼림칙하게만 다가왔다. 긴장에서 온 안면근육이 강화 되어서 카메라를 노려보지 마시라는 말만 몇 차례 들었는지 모른다. 물욕도 없고 성욕도 없고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욕구들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니냐고 핀잔을 들었지만 송태원이라고 해도 욕구는 있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 타고 다닐 경차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적금으로 목표금액을 다 모아가서 구입할 예정이었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그럴듯한 차종을 뽑으라고 했지만 어렸을 때 보았던 빨간색의 주사위 같은 차에 꽂혀있는 터라 남의 말을 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타고 다닐 건데 뭐.
“혹시 존경하는 사람은 안 물어보더냐?”
“세종대왕이요.”
재미없는 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답에 눈썹을 일자로 늘어트린 그는 다음 번 인터뷰 하면 선배가 잘 가르쳐줘서 그런거라고 해 라며 등을 두들기며 웃었다. 송태원 본인도 무시 당할 체격이 아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프로선수를 노리고 있었다던 선배는 근육의 짜임새부터가 달라서 장난이 섞인 등 두들기기가 거의 징으로 치는 느낌이었다. 정말 어마무지하게 아팠다. 커다란 파리채로 몸을 내려찍는 느낌에 컥 하고 숨을 토했지만 그게 왠지 우스운 느낌이 들어서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어, 웃었다. 천 원 적립.”
밥을 먹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꼬깃꼬깃하게 접혀진 천 원 지폐를 조심해서 피고 깨끗하게 접어 본인 자리 위에 있는 형광녹색의 돼지저금통에 넣었다. 몇 장 들어있지 않은 저금통에 돈이 들어가자 사랑스럽다는 듯 돼지를 토닥여주고 마저 식사를 했다.
“그건 또 뭡니까.”
“너 좀 웃고 다니라고, 어린 게 맨날 인상만 팍 쓰고 다니고 말이야.”
무려 송태원 웃음 적금이 된다 이 말씀이다. 이거 다 모아서 2만원 되면 치킨 한 마리 쏜다. 호기롭게 외치는 목소리의 주인을 송태원은 기가 막히게 바라보았다. 마트에서 돼지저금통을 산 게 그런 황당한 이유 때문이었다니. 그러나 몇 장 들어있지 않는 지폐를 보니 그렇게 웃지 않고 다녔나 싶어 입가를 매만졌다. 일부러 인상을 쓰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경찰이 히죽히죽 웃고 다니는 게 좋아보이지는 않을 것 같아 나름대로 표정을 갈무리했던 게 오히려 버릇이 되어버렸나 보다.
“치킨 말고 피자 사주세요.”
“피자는 밀가루야. 사람이 고기를 먹어야지.”
치킨에 닭은 없고 밀가루 껍질 튀김만 왔다며 진심으로 화를 내던 사람이 누구였던가. 어딜 선배를 그렇게 건방지게 보냐며 머리를 거칠게 부비는 웃는 상의 얼굴을 보고 송태원은 또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어, 너 또 웃었다. 치킨 사준다니까 많이 웃는 거지! 이런 속물적인 놈! 선배의 바람이 반 쯤 들어간 호탕한 웃음소리가 파출소를 경쾌하게 울렸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꺼지기라도 한 듯 주변이 점점 어두워져 블랙홀 마냥 차츰 빨려 들어갔다. 웃고 있는 사람은 여전히 거기에 있는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도 거기에 있었는데 갑자기 뚝 잘라서 떨어진 마냥 다가갈 수 없었다.
송태원은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끝도 없는 어둠만 펼쳐진 공간에서 송태원은 아마도 하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선배, 그런데 왜 그렇게 허무하게 갔습니까.
치킨 사주신다고 하셨는데.
이런 것도 떼먹기 있습니까.
왜 당신이 죽고, 내가. 내가 대체 뭐라고.
그리운 꿈을 꾼 것 같다. 무슨 꿈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이불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는 볼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부모님의 꿈이라도 꾼 걸까. 송태원은 남몰래 이불을 적시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감상에 빠져있을 시간도 여유도 필요도 없었다.
일곱 시가 넘어 스프링처럼 이불에서 튀어나갔지만 곧 추석연휴 라는 걸 알고 안도했다. 각성자 관리실에는 오후에 출근 할 예정이었고 오전에는 별 다른 일정이 없었다. 추석 인사 찍은 것이 떠오르자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차라리 사진을 찍고 말지 영상 촬영은 정말 싫다. 카메라에 찍히고 싶었으면 연예인이나 모델이 됐지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지는 않았을 거다. 자꾸 카메라 노려보지 마시라는 소리를 듣지만 최선을 다 하는데도 안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자기 때문에 고생을 하는 모습이 죄송스러워서 노력을 했지만 노력하지 마시고 그냥 자연스럽게 있으라는 야단만 들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조용한 각성자 관리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대놓고 사고를 치겠다는 듯 협박조인 문자에 송태원은 어이가 없어졌다. 한유진의 속셈이 뭔지는 뻔히 보였다. 자기를 고생 시키고 싶지 않아서 여러모로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그 도움이 전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는 문제점이다)추석에 사고를 치진 않겠지. 하지만 혹시 모를 만약의 가능성을 대비하여 사육소로 향했다. 그 후 마치 구렁이 담 넘어가듯 호박전과 새우튀김이 입에 와다다 넣어지고 고스톱판에도 앉았다가 윷놀이 판에도 앉았다가 방금 쪘다는 따끈한 송편상도 받게 되었지만. 내가 왜 여기서 쌍피를 들고 있지 하고 자문 해보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맞다! 보여줄 거 있어요!”
송편을 3개나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박예림이 입을 열더니 용케도 또박또박 외치고 휴대폰을 꺼내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송태원의 목 뒤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사고가 상황의 몇 배를 빠르게 따라잡았다.
“송실장님 각성 전에도 뉴스 타신 적 있더라구요! 이거 완전 기밀이에요~!”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휴대폰을 바람과 같은 속도로 낚아 채 망설임 없이 악력으로 두 동강을 냈다. 추석 특선 방송을 내보내는 텔레비전만 시끄럽게 떠들 뿐 공간 자체는 조용해졌다. 모두 입을 딱 벌리고 송태원을 바라보았고 송태원은 두 쪽이 난 휴대폰을 박예림에게 돌려주며 예의바르게 사과를 표했다.
"배상해드리겠습니다."
자기를 둘러싼 이들의 눈동자에 황당함이라는 감정만 가득 찬 것을 보고 송태원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태연하게 송편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돼지저금통에 천 원을 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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