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구(悠久)
“…따라서 앞서 벌어진 던전 발발은 여러 협회에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웅성이는 기자들을 뚫고 돌아온 업무실은 고요했다. 소음이 가득했던 인파에 파묻혀있다 보면 급격히 찾아오는 고요도 때론 어색하기만 하다. 툭 늘어진 두 팔은 힘없이 덜렁거린다. 몇 년이 지나도 기자회견은 통 익숙해질 줄 몰랐고 그 덕에 혼자 남게 되는 시간에 몰려오는건 지끈거리는 편두통과 피로였다. 무겁게 내려앉는 눈꺼풀 위로 손등을 올려 형광등을 가려보지만 도무지 진정될 줄 모르는 머릿속은 오늘따라 과했던 카페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이 사내에게, 보고 있노라면 짠해지는 피로를 풀 여유같은건 없었다. 늘어진 몸을 다시 훅 일으키자마자 눈에 들어온 서류 내용은 암담했다. 커다란 흐름만 따라 내려온 시선의 끝엔 정갈한 인쇄체 위에 도장이 찍혀있었다.
행정 안전부 산하 각성자 관리실 실장 송태원.
관리실로 돌아온 송태원은 동료 직원들의 인사에 대한 가벼운 목례만 남기고 빠르게 사라졌다. S급의 체력은 어지간해서는 떨어질리 만무하다고는 하나 정신적으로 받는 피로가 때때로 육체로 연결될 때도 있었다. 던전과 기자회견. 이 두 가지를 처리하고 온 사이에 쌓인 결재 및 안내 서류만 수 십가지였다. 송태원은 오른쪽 세 번째 칸 서랍에 아주 깊숙이 넣어둔 흰색 봉투를 또 한번 꺼낼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으나…
‘실장님 심호흡 심호흡! ’ 하던 동료 직원의 애원같은 도움으로 사표 던지기 만큼은 오늘도 미룰 수 있었다. 첫 글자 ‘사’가 죽을 사에서 뒤늦게 바뀐 것은 아닐까하는 부질없는 생각에 잠시 빠져보는 송태원이다.
설령, 진심을 담아서 소위 때려친다고들 하지 않나. 도망치듯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온다고 해도 송태원이 갈 길은 뻔하디 뻔했다.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한적한 지역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시간에도 시선에도 구애받지 않으며 사는 삶.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자 얼굴만 작게 내민 직원이 서 있었다. 목에 맨 사원증이 엉망으로 죽 늘어져있었다.
― 실장님한테 광고제의가 하나 들어왔는데 그게...
손에 들린 시나리오집은 제법 가벼워보였으나 들고 오는 그녀의 표정은 그닥 좋지 못했다. 윗선에서 들어오면 그대로 이행해야하는 입장에서 싫든 좋든은 없다.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로 이어질 뿐.
이전에도 몇 번의 광고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사설에서 들어오는 건들은 될 수 있으면 거절하곤 했다. 공익광고 또한 ‘이미지’로 팔아먹고 산다고 해도 부수적인 이익을 추구해가면서까지 매체에 얼굴을 내보이고 싶지 않았다. 두껍고 번쩍이는 카메라 렌즈 앞에만 서면 그나마 (직원들이 들으면 기함하게 될) 유한 얼굴이 한껏 굳어버리곤 하였다.
인내하듯 힘껏 틀어쥔 주먹을 이내 풀어버리며 얇은 A4용지를 받아들자 가보겠다는 짤막한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주제야 안 봐도 뻔했지만 예상대로 흘러가자 더는 읽어볼 필요도 없었고 한 두장 펄럭이다 결국 얇은 종이뭉치는 힘없이 책상 위로 흩날렸다. 머리가 또 지끈거려온다.
던전 브레이크가 발발하기 전. 지금에 비교하면 훨씬 평화롭다면 평화로운 세상이었다. 마구잡이로 난무하는 끔찍한 범죄는 적어도 도를 넘어서는 지경까지는 없다고 자신하는 때의 자신도 그곳에 서 있었다.
국가와 공권력에 의지해주길, 혹은 그들이 당신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으니 안심하라는 진부한 문구들. 그렇기 때문에 잘 먹혀드는 면도 없잖아 있기 때문에 줄곧 입을 다물었고 성실히 임했었다. 조금 더 앳된 송태원은 희망이란 글자에 기대라는걸 해보기 시작했었으니까.
땅이 뒤집히고 더 이상 파란 제복과 어설픈 쇳덩어리 총만으로는 안된다는 세상이 왔다는 실감이 들고서야 비로소 송태원은 손을 탄 공무원증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칼선이 잘 잡힌 말끔한 색의 셔츠 대신 기본이 되는 셔츠와 위아래로 검은색인 정장. 흡사, 장례식장에라도 가는 사람같다며 너스레를 떨던 이들에게 송태원은 사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그러했다.
ㅡ 일반 시민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각성자는 곧바로 신고 바랍니다. 그에 응답하여 각성자 관리실은 시민 여러분을 향한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송태원은 과연 이 문장이 성립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본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는 족족 신고를 받고 빠르게 달려나가도 누군가는 항상 피를 보고 있었다. 초기, S급으로 각성했을 당시만해도 이 괴리감을 이겨낸 순간을 손에 꼽는게 더 빠를 지경이었다.
보호. 검은 잉크로 새겨진 이 두 글자 위로 내려온 엄지는 편편한 활자를 조심히 문지른다. 정갈하게 닫혀있던 입술이 더욱 굳게 다물린다. 뒷통수가 뻐근해져옴을 느낀다.
이 글자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보호 (保護) [보ː호]
[명사] 1.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
환한 모니터에선 이렇게 기술하고 있었다.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그러나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자신과는 한 구렁텅이 정도의 거리감이 있다. 애초에 무언가를 보살피거나 돌보기 위한 전제로는 작은 애정, 동정심, 혹은 연민… 따위가 필요하나 송태원에게 연약한 감정이 자리할 빈 방은 이미 무겁고 검게 가라앉은 것들로 들어차서 더는 공간이 없었다.
남동생을 잃은 순간부터가 시작이었다. 유약한 존재들은 더 강한 이가 지켜야하나 다른 색으로 뒤덮인 이 세계에선 약육강식만이 진리인 듯 흘러갔다. 송태원은 자신의 작은 신념을 마지막처럼 고집했으나 그 또한 구부러질 수 밖엔 없었다.
각성때부터 현재까지를 살펴보면 그는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지키는, 그런 빛나는 영웅따위는 될 수 없었다. 영웅이라는 휘황찬란한 위치는 자신과 한참 엇나가있었고, 지켜야 할 존재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적에게 있어 파고들기 좋은 약점이 된다. 주저해선 안 될 때, 한 번 더 고민을 하게 되고 금방 빼앗겨버리고 만다.
곧 피곤에 지쳐보이는 눈 위로 커다란 손이 덮인다. 피부가 따갑게 쓸려나가는건 아닐까싶을 정도로 마른 세수를 하더니 이내 고개를 탈탈 털어버렸다.
문득, 등을 돌려 창문 너머로 본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일상이 바쁨으로 그득 들어차면 하루가 길고 긴 나날들이 지속되면 가장 먼저 둔감해지는 부분은 계절의 변화였다. 봄에는 꽃이, 여름에는 녹음이 말해주곤 했으나 그 후에는 피부에 맞닿는 바람이 먼저 일깨워주곤 해서, 출근길을 나설 때야 비로소 찬 바람의 계절이 왔음을 알았다.
모처럼 바람을 느끼는 여유도 나쁘진 않겠지. 의자에 걸려있던 정장을 챙겨 사무실에 남아있는 직원에게 급한 용무는 전화를 달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토막같은 여유조차 사치로 치부하기 전에. 조금 더.
타들어가던 여름도 이제는 제 풀에 지쳐 사라지고 바람이 부드러워지는 날들 이어졌다. 평온한 날들을 사람들은 마음껏 누렸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가게 앞을 서성이는 사람, 어린 아이와 나란히 가는 다정한 어머니, 삼삼 오오 모여 움직이는 학생들까지. 전부 평범한 사람들 뿐이었다. 그 중에도 통화 내용이 곧 각성자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걸어갔지만 유독 이 길거리엔 전쟁과 각성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만 줄을 지어 길을 걸었다.
구둣발에 채이는 이 길바닥도 언제 던전과 함께 무너져내릴지 모른다. 조각같은 휴식시간이라며 거닐던 이 길에서도 결국 수상한 자는 없는지, 다친 이는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자신을 발견한 송태원은 속이 거북해졌다. 정말 자신에게 쉰다는 개념은 어디로 빠져버린건지.
“ 아얏 ”
“ ……? ”
두 다리에 툭 부딫히는 얕은 타격감과 짤막한 신음소리에 절로 숙여진 시선에는 작고 까만 머리통이 서 있었다. 다행히 그가 달려들지 않아 큰 외상은 없어보이지만 송태원에게 어린 아이들은 경계의 대상1호쯤 되었다.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 그 아이들을 위해서가 가장 확실한 이유였다.
“ 그… 괜찮으십니까? ”
“ 어앗...네! 괜찮은데... 푸, 풍선..! ”
작은 손가락이 가르키는 방향엔 아직도 희게 푸르른 구름으로 바알간 풍선이 힘없이 바람을 타고 끝없이 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건장한 성인의 키로도 더는 붙잡기 힘든 높이로 올라가기 직전.
여기서까지 스킬을 쓸 마음이 없었으나, 제 허리께에도 미처 오지 못하는 아이의 안타까움 섞인 목소리마저 무시할 마음은 들지 않았기에. 서서히 증가해가는 질량에 맞춰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다른 다리는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묵직해져오는 무게가 느껴지는 그 순간,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방금 전까지 아이의 손에 걸려있었을 얇은 실을 향해 팔을 뻗었다. 손끝을 아슬하게 스쳐 오르는 모양새에 미간을 좁혔으나 이제 다시 한 번 뻗친 손에 걸려든 줄을 움켜쥐고 그대로 바닥에 안착했다.
마법을 겪은 사람처럼 크게 확장된 눈에는 반짝임이 서려있었다. 어쩐지, 뒤늦게서야 후회가 밀려왔으나 기쁨에 넘쳐 흐르는 눈빛은 부담스러우면서도 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 헤헤..풍선...!! ”
“ 놓치지 않게 잘 감아두십시오 ”
감사함미다-. 아직 자라지 못한 혀가 만들어내는 짧고 어린 소리가 낭랑했다. 어른들에게 잘 배운 티라도 내 듯, 두 손을 공손히 모아 허리를 깊게 숙이는 소년의 모습에 송태원도 어쩐지 자신도 따라 인사해야할 기분에 못 이겨 결국 아닙니다. 하고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다시 마주한 티없는 얼굴은 손목에 줄을 돌돌 감고 있었다. 한참 차이나는 키에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던 소년은 방금 전처럼 손가락으로 가리켰으나.
“ 지켜주는 아저씨! ”
“ …예? ”
듣기만 해도 익숙치 않은 수식어의 대상이 주변에라도 있을까 살펴보았지만 아이와 가장 가까이 있는 성인 남성은 송태원 뿐이었다. 때 늦은 대답은 그가 어벙해보이도록 만들었다.
“ 자주 봤어요!! 지켜준다는 아저씨! ”
앞뒤 문맥 없는 아이의 말이 곧 반 년전에 내보냈던, 그 무난한 색의 광고를 말한다는걸 한참을 생각한 뒤에야 알았다. 지켜준다는 아저씨. 그때도 오늘 받은 문구와 비슷하긴 했었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도 들었는지 빠른 손인사와 함께 마주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아이는 사라져버렸다.
풍선을 건네주며 잠시 닿았던 자그마한 온기가 아직도 손 안에 맴돌고 있는 듯 했다. 지금은 비어있는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송태원이 손을 내려다볼 일은 그 스킬을 사용할 때 외엔 없었으며 그것이 아래를 잘 보지 않는 이유였다.
스며드는 약탈.
이름 그대로 직접 빼앗지는 않으나 상대의 우세함을 빼앗아오고야 만다. 해를 입히지 않은 채로. 처음엔 스킬에 붙여진 이름이 그와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손 안에 굉장히 아주 오랜만에, 생명체가 닿을 수 있어서.
숱한 선택지가 있었다. 대학 입시 원서를 넣으려는 직전까지도 송태원에게 진로와 관련된 길은 무수히 널려 있었다. 그 폭을 좁힌 이는 송태원이었다. 적어도 자신처럼 소중한 이를 쉽게 잃는 이는 없도록 하겠다고 자처해서였다.
양의 탈을 쓴 늑대. 풀을 뜯는 목양견. 상자에 갇힌 검은 짐승. 이해하고 싶지 않아도 내포되어있는 의미가 충분히 짐작이 가는 수식어들도 실은 송태원이 만들어낸 그 결과물들이다.
아직까지는 간절하고 소중히, 또 바스러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특정한 이는 없다. 물론, 현제 가까이 하고 있을 마수 사육소 소장이나 그의 동생인 어린 길드장, 공적인 임무로써 뒤를 봐주어야 할 특정 길드의 우두머리, 그리고 그 외의 자주 보이는 사람들 정도는 제 손으로 힘을 다하여 죽지 않게끔은 할 수 있다. 그정도는, 송태원에게 사치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목적이 흐릿한 전투여도 상관하지 않는다. 던전 브레이크와 뒤집힌 세상의 근원이 사람이 되었든 전혀 알 수 없는 존재의 탓이 되었든 중요치 않다. 송태원이 해야 할 임무는 그저 묵묵하게 그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살아남으며 해가 될 만한 존재는 격리시키는 것. 우선은 그것이 전부일 지도 모른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