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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죽음을 원한다

송태원은 옛날 옛적, 어머니가 읽어 주시던 동화를 항상 곱씹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괴물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괴물을 두려워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사가 나타나 괴물과 싸웠어요. 괴물은 죽었고 사람들은 행복했답니다.

송태원은 눈을 뜰 때마다 동화를 생각했다.

 

괴물은 죽음을 원한다

 

던전이 나타났다. 불규칙한 등장은 항상 행정안전부의 업무를 두 배로 늘렸다. 그 중에서도 유일한 S급인 송태원은 길드에 연락하랴, 일반인 통제하랴, 몬스터 대비하랴 누구보다 바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두꺼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바삐 움직였다. 공격적인 타자 소리는 십 분이 지나고서야 멈췄다. 정적 속에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한 방향을 향했다. 검은 눈동자 속으로 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총과 가죽 장갑만을 손에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탄 조끼도 챙기지 않고 문고리를 잡는 그에게 한 사람이 소리쳤다.

"송 실장님, 그렇게 입고 나가시면 죽어요!"
 
모두의 시선이 주름 하나 없는 여자에게 향했다. 일주일 전 입사한 파릇파릇한 신입이 얼굴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신입 사원은 발발 떨었으나, 그녀를 보는 사원은 풉, 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여성은 저와 동떨어진 반응에 눈만 동그랗게 떴다.
 
"아이고, 민아야~ 안 죽어, 안 죽어! 송 실장님 S급이잖아. 정장만 입고 가셔도 항상 살아 돌아오셨으니까 걱정하지 마!"
 
송태원에게 던전에 대해 보고하던 대리가 신입사원의 어깨를 턱 때렸다. 송태원은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나왔다. 그의 얼굴은 무심했으나, 계단을 내려오며 창문 속 자신을 보는 모습은 들떠 보였다. 송태원은 창문을 곁눈질하며 생각했다. 위험해 보이기는 하군. 보랏빛 입술이 위로 솟았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사람들은 항상 송태원을 걱정했다. 혹여나 던전에서 죽으면 어쩌나, 하고. 송태원도 항상 걱정했다. 혹여나 던전에서 살아남으면 어쩌나, 하고. 송태원은 항상 바랐다. 한줌의 흙이 되고 싶다. 괴물은 죽음은 마을에 행복이니까.
 
빨간 차에서 구겨진 몸을 피며 한 남자가 내렸다. 상처 가득한 가죽 구두가 땅을 밟았다. 협회 관계자인 듯 정장 차림의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송태원도 허리를 숙였다 피더니 지체없이 던전 게이트로 몸을 던졌다. 정장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이 쯧쯧 혀를 찼다.
 
"저렇게 몸 굴리다 훅 가지. 젊어서 그런가 무서운 게 없나봐."

 

***

 

시야가 이지러지더니 빌딩 사이의 건조한 바람 대신 세찬 눈발이 쏟아졌다. 송태원은 오소소 돋는 닭살을 느끼며 움직였다. 언덕에 발걸음이 소복이 쌓여갈 수록 눈더미가 높아져 갔다. 발가락에서 통각이 지워졌다. 눈송이가 산소를 앗아갔다. 그럼에도 송태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곧이라도 세상과 이별할 듯한 감각이 향기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기를 맛 볼시간은 없었다. 배 곪은 몬스터가 무방비한 인간에게 몰려들었다. 긴 손톱이 다리를 긁었다. 신음 소리가 절로 나오는 통증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에서는 분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얀 이빨이 어깨를 거머쥐었다. 이빨을 타고 넘어온 독이 어깨에 열을 몰았다. 그럼에도 송태원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송 실장님, 많이 아프세요?!"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몸이 스르륵 뒤를 돌았다. 송태원은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사람들이 와 있었다. 곱슬머리와 직모처럼 성격도 정반대인 형제가 송태원을 등지고 있었다. 송태원은 한유진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제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닫고 난 후에는 시야가 빠르게 멀어져갔다. 눈에 힘을 주어도 수채화처럼 형제의 모습이 번져갔다. 송태원은 생각했다. 아, 드디어. 생각했던대로 무섭지 않았다. 편안했다.
 
"송 실장님, 정신 차리세요! 돌아가시면 안 돼요! 여기 포션! 포션 드세요!"
"안…… 됩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물건은, 법에…… 접촉……."
 
송태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한유진이 그의 입술에 포션을 흘러내리기 전에 남자는 칠흑에 잠겼다.

 

***

 

검은 속눈썹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속눈썹이 흔들릴 때마다 흙빛 눈동자가 시야를 되찾았다. 주변 사물이 뚜렷해졌을 때, 철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송태원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볼이 뜨거웠다. 그러나 어깨는 뜨겁지 않았다. 정장은 찢어지고, 붉게 물들었으나 그 안의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검은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상처가 사라졌다. 왜? 폐에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어째서? 타인에게 보인 적 없는 남자의 절망이 눈동자에 떠올랐다. 송태원은 쓰게 웃었다. 나의 소망이 또다시 부스러졌구나.
 
"뭘 나라 잃은 얼굴을 짓는 거야. 감사하다고 넙죽 절은 못할 망정."
 
굳어 있던 얼굴이 천천히 돌았다. 송태원은 숨을 들이마셨다. 기척도 없이 남자 아이가 눈앞에 있었다. 여덟 살이나 되었을 법한 아이는 송태원의 가슴에도 닿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빛 한 점 없는 검은색 땅과 하늘에 섞인 탓인지 위압감이 느껴졌다. 곱슬머리 사이에서 보이는 붉은 눈동자가 송태원을 응시했다. 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너, 몸 좀 아껴. 그렇게 몸 굴리다가는 곧 죽을 거야."
"정말입니까."
 
언제 실망했다는 듯 남자의 얼굴이 해사해졌다. 소년은 동그래진 눈을 얇게 늘렸다. 주의하라는 말에 기뻐하는 모양새라니. 이것 참, 그놈이나 이놈이나. 요즘 애들은 왜 죽음에 무덤덤한지. 쯧쯧. 붉은 입술이 혀를 찼다.
 
"슬프지 않냐?"
"슬프지 않습니다."
"연애도 못 하고, 결혼도 못 하고, 네 아이도 보지 못하고 죽는단 말이다."
"더욱 좋습니다."
"미쳤구만."
 

송태원은 미소 지었다. 그의 말대로 스스로 죽음에 침전하는 자신은 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화 속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동화는 항상 괴물이 죽어야 해피엔딩으로 끝났으니까. 그리고 송태원은 괴물이니까.

"싫다해도 나는 너를 살릴거야. 너는 이 세상을 위해서 필요해."
"이 세상을 위해서 저는 죽어야 합니다."
"틀린 생각이야."
"아닙니다."
"어른한테 말대답하는 거 아니다."


송태원은 고개를 기울였다. 잘 보아줘도 고작 열 살인 아이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송태원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년은 남자의 어깨를 밀었다.
 
"그러니 돌아가, 다시는 여기 올 생각이랑 하지 말고."
 
송태원은 무어라 반박하고 싶었으나, 꿈은 기다리지 않았다. 검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며 눈을 열었다. 때가 껴서 노랗게 변한 천장이 보였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투명한 수액이 떨어지고 있었다. 다시 오른쪽으로 돌리니 하얗게 점등하는 핸드폰이 보였다. 송태원은 핸드폰 버튼을 눌러 다급한 사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알겠다는 말을 끝으로 핸드폰을 내려놓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은 지키지 못하겠군요."
 
수액 바늘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손등에서 피가 흘렀으나, 남자는 기쁜 얼굴로 와이셔츠를 입으며 동화를 떠올렸다.

옛날 어느 마을에 괴물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괴물을 두려워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용사가 나타나 괴물과 싸웠어요. 괴물은 죽었고 사람들은 행복했답니다.

검은 구두가 병원 바닥을 박찼다.


 
괴물은 오늘도 던전으로 향한다. 동화 속 해피엔딩을 찾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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